#4 - 피치가 망한 날 파이널에 올라갔다

중간 피치에서 터진 기술 문제, 주최측이 준 재도전 기회, 파이널 피치 준비하라는 한마디의 의미, 그리고 트랙 1위와 POSTECH 총장상. 시상식보다 오래 남은 건 며칠 전의 대화였다

만드는 건 끝났다. 남은 건 보여주는 일이었는데, 그게 제일 먼저 망했다.

중간 피치가 안 됐다

우리 순서는 중간쯤이었다.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로 피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.

해커톤에서 이건 흔한 사고다. 흔하다는 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. 대회 내내 만든 결과물을 몇 분 안에 전달하는 자리인데, 그 몇 분이 제 기능을 못 하면 앞의 며칠이 심사위원에게 도달하지 않는다. 코드가 돌아가는지와 코드가 돌아가는 걸 보여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라는 걸, 그날 몸으로 배웠다.

피치가 끝나고 나서 팀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.

한 번 더

그런데 주최측에서 기회를 줬다. 마미톡 트랙 피치가 다 끝난 뒤 마지막에 한 번 더 하라고.

재도전도 같은 팀원이 다시 올라가서 했다. 이게 결과적으로 좋게 굴렀다. 화면을 직접 그린 사람이 그 화면을 설명하니까 설명과 데모가 어긋나지 않았다. 플로팅 버튼이 왜 필요한지, 쿠팡을 나가지 않는 몇 초가 왜 중요한지가 기능 나열이 아니라 장면으로 전달됐다.

그리고 한 번 더 한다는 건 두 번째라는 뜻이기도 했다. 처음 올라갔을 때 어디서 말이 꼬였는지 아는 상태로 같은 피치를 다시 하는 거라, 앞의 사고가 리허설 노릇을 했다. 사고가 없었으면 이 피치는 없었을 거다. 그건 좀 이상한 계산이다.

파이널 피치 준비하세요

발표가 끝나자마자 마미톡 관계자분이 오셔서, 파이널 피치를 준비하라고 했다.

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단번에 알아챘다. 2023에 나가봤기 때문이다. 파이널 피치에 올라간다는 건 최소한 트랙 1위라는 뜻이다.

작년의 3등이 여기서 정보로 돌아왔다. 그때는 그냥 신기하고 벅찬 경험이었는데, 1년 뒤에는 대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. 같은 자리에 두 번 가는 일의 값이 이런 데 있구나 싶었다.

결과

트랙 1위였다. 나중에 POSTECH 총장상까지 받았다.

오래 남은 건 시상식이 아니었다

그런데 지금 이 대회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나오는 장면은 시상식이 아니다.

며칠 전에 팀원과 거의 다투듯이 했던 그 대화다. 데이터가 없는 성분 앞에서 뭘 보여줄 거냐를 두고 오래 얘기했던 자리. 결론이 났을 때는 별거 아닌 것처럼 지나갔는데, 남은 건 그쪽이었다.

상은 그날의 결과물에 주어진다. 그 대화는 결과물이 어떤 물건이 될지를 정했다. 도담도담을 다시 만든다고 해도 나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선택을 할 거고, 그게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가져가는 전부다.

모델한테 모른다고 말할 능력을 준 것. 그게 제일 잘한 일이었다.